'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구절이다. 비록 소설 속의 설국이 삿포로 지역을 말하는 건 아니지만, 이 글귀가 내 심정을 설명하기에 더할 나위가 없는 건 분명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의 이륙 후에 2시간, 내린 곳은 신치토세 공항이었다. 신치토세 공항은 축제가 열리는 삿포로와는 좀 거리가 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공항과 버스 터미널이 연결되어 있어서, 숙소 앞까지 운행하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마침 우리가 온 날이 눈이 좀 많이 온 날이라, 마치 환영이라도 해 주는 느낌이었다. 아니면 사실 '돌아가라, 한국인' 느낌이었을지도 모르다. 아무튼 버스 안에서의 우리는 쏟아지는 눈을 시각으로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버스에서는 그렇게 멋있게만 보이던 설경이 버스에서 내리자 오감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선을 빼앗는 건 여전했지만, 촉각으로 슬슬 그 존재감을 늘리기 시작한다. 다행히 숙소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았기에, 우리는 얼른 짐을 숙소에 풀어놓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삿포로 시내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이 때 시간이 오후 3시 정도라 많은 식당들이 브레이크 타임을 가지는 상태였다. 첫 날 점심에는 스프 커리를 먹겠다!라고 마음 먹은 상태였기에, 이리저리 찾아본 결과 Suage라는 곳에 가게 되었다.
메인 메뉴는 스프 커리인데, 주 토핑과 밥 종류(흰쌀밥과 오징어 먹물 밥), 맵기와 추가 토핑을 정해서 주문하면 된다.
국밥과 텐동을 섞어 놓은 느낌이다. 고기와 여러 야채, 계란, 버섯 등이 토핑으로 나오는데, 텐동에서의 튀김 구성과 상당히 유사한 느낌이다. 하지만 커리 국물은 한국의 국밥을 떠오르게 한다. 약간의 느끼함을 커리 특유의 향으로 잘 잡아주어서 밥하고 궁합이 참 좋다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먹는 방법을 잘 몰라서 고생을 좀 했는데, 정해진 방법은 없는 모양이다. 아예 말아 먹어도 되고 밥만 한 숟갈 떠서 국물에 담가 먹어도 된다.
삿포로에 왔는데 맥주를 빼먹을 수 있겠나. 온 기념으로 한 잔 해야 하지 않겠나!
삿포로 맥주의 본고장답게 '삿포로 클래식'이라는 지역 한정 맥주를 팔고 있었다. 맥주 맛은 사실 잘 모르는 나지만, 여타 맥주들보다 확연히 부드러운 맛에 넘김이 참 좋아서 딱이었다.
삿포로 맥주에 대한 자세한 후기는 2일차 후기에 이어진다. ㅎㅎㅎ
일단 배를 뜨뜻허니 채웠으니 다음은 메인 어트랙션인 눈 축제를 볼 차례이다.
삿포로 눈 축제는 두 곳으로 나뉘는데, 스스키노 역 시내의 얼음 조각상과 오도리 공원 부근의 눈 조각상 전시로 나뉜다. 마침 우리가 식사를 한 곳이 스스키노 역 인근이었기에 얼음 조각상을 먼저 보기로 했다.
스스키노 역 거리가 한국의 명동 정도의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전광판 같은 것도 무지하게 많고 해서 번화가라는 것이 확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바로 이 얼음 조각상들.
그 와중에 일본답게 마스코트 캐릭터가 이목을 끈다. 이미지 하나 가지고 복붙한 느낌이라 가성비가 느껴졌다.
요로코롬 멋있는 얼음 조각상들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유명한 관광지이다 보니 저렇게 영어로 작품 제목이 써 있기 때문에 구경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기본적으로 조각상들이 두 부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회사로부터 협찬을 받아서 제작된 것들. 위의 코카콜라 폴라베어처럼 협찬을 받았구나 하고 확 느껴지는 것들도 있다.
요런 고퀄 작품들은 협찬작은 맞는데, NITORI라는 회사에서 협찬한 대회에 출품한 작품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자유주제가 많고 퀄리티가 굉장히 훌륭하다. 그래서인지 외국인들이 많이 촬영하고 있곤 했다.
다른 한 종류로 요런 건 협찬작까지는 아니고 행사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포토존용 얼음 조각으로 보였다.
얼음 자동차, 의자, 동물들 등등 여러 사진을 찍기 괜찮은 체험형 작품들이 많이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쯤 구경하니 눈발이 너무나 거세져서 도저히 맨정신으로 더 구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게 문제. 그래서 사진도 많지 않다.
그래도 행사를 다 구경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오도리 공원으로 이동하다가 다누키고지 상점가를 지나치는 순간...
"날도 추운데, 실내에서 몸 좀 녹이고 갈까?"
다누키코지 상점가는 사진이 많지 않아서 말로만 좀 설명하면...
식당, 카페, 드럭스토어부터 해서 돈키호테, 기념품 가게, 오락실, 가챠몰, 빠칭코까지... 잡다한 가게들이 전부 모여있는 상점가라 보면 된다.
사실 메인으로 볼 만한 곳은 아니고, 여행 끝자락에 선물 사러 가기 좋은 곳인데, 너무 피곤해서... 들어가버렸다.
블로그에 적을 만한 이야기를 하나 해 보자면, 요 상점가의 돈키호테 건물 4층에는 "옐로우 서브마린"이라 해서 보드게임 전문 가게가 있다.
샵에 들어서기도 전에 느낀 첫인상은, '역시 보드게임보다는 TCG가 엄청나네...'였다. 가게 옆에 유희왕, 포케카, 매더게 등의 TCG 카드샵이 크게 있는데, 안에서 카드게임을 즐기고 계시는 그 압도적인 인파를 보면 절로 엄청나다는 생각이 든다.
여튼 좀 헤매다가 어떻게 찾아가지고 샵에 들어왔다. 구석에 언핏 보면 작게 보드게임 코너가 있는데, 그래도 제법 있을 건 다 있는 편이었다.
재밌는 건, 확실히 보드게임 관련 인프라가 잘 구성되어 있는 덕인지 일본 디자이너 분들의 보드게임이 엄청 많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소위 '덕'스러운 보드게임도 많이 보였다.
일본 샵에 왔으니, 일본산 게임인 '필름을 감아'라든가, '트레지디 루퍼'라든가 하는 평 좋은 게임들을 사고 싶었는데, 찾기도 복잡하고 시간도 없고 해서 간단히 오잉크 게임 하나만 집어들고 나왔다. 여유 되면 무슨 게임인지 나중에 개봉기 쓰는 걸로...
오도리 공원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인 TV타워다. 지금도 송출용으로 사용되는 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은 전망대로서의 역할이 좀 더 강한 거 같다.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데 인 당 720엔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원화로 하면 7500원 정도 된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요로코롬 축제의 야경을 볼 수 있다. 스케이트 링크와 눈썰매 트랙이 눈에 띈다
야경을 구경하는 이외에도 기념 사진을 팔기도 하고, 기념품 샵도 있고 해서 한 번쯤 올라가보시는 걸 추천한다.
오도리 공원 주위 거리에서는 이렇게 눈 조각상을 엄청 큰 사이즈로 전시한다.
얼음하고 다른 점은 일단 스케일이 큰 작품이 많다는 점과, 저런 식으로 영상물을 이용해서 역동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거다.
저 말과 기수 사진이 아마 홋카이도 신문사의 협찬이었던 작품으로 기억하는데, 과거 중세 기사 시대부터 해서 현대의 경마 기수까지 영상이 쫙 나오는데 무슨 의민지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일단 멋있긴 하다. 스케일에 압도되어서.
보통은 기업 협찬을 받은 조각들이 많기 때문에 저 츄~르 냥이처럼 광고성 성격을 띄는 조각들이 많다.
컵라면같은 식품 광고부터 게임 광고, 애니메이션 광고, 심지어 미쿠까지(은근 비중이 컸다) 스케일 큰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학생들 or 일반인이 조각한 작품들만 전시해 놓는 섹션도 있었다. 유명 개그 콤비부터, 커비, 짱구 등 이 쪽이 퀄리티는 떨어져도 좀 친숙한 작품이 많았다. 다만 우리가 이 쯤 왔을 때에는 이미 다들 지친 상태여서 대충 훑기만 했지만...
운이 좋으면 오른쪽 사진처럼 직접 조각을 하고 계시는 광경도 볼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조각가들이 와서 솜씨를 뽐내는 섹션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각국의 많은 조각가들이 직접 조각을 하는 열정을 보고 있자니 문득 열심히 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좀 살자!
축제만 보다가 시간이 10시가 되버려서 늦게나마 들린 징기스칸집.
이름만 들으면 몽골 요리인 것 같지만 홋카이도 전통 요리고, 저렇게 양고기를 구우면서 주위에 숙주, 당근, 단호박 등의 야채를 놓고 소스를 두르면서 먹는다.
일단 양고기 특유의 냄새는 많이 없는 편이었고, 소스와 고기 향이 스며든 야채를 와작와작 먹는 맛이 있었기에 나름 만족하며 흡입.
축제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일본의 편의점 브랜드 중 하나인 Lawson에서 내일 아침 먹을 걸 사자고 1일차 일정은 종료.
못 올린 사진과 세부 이야기가 많은데 나중에 사진과 후일담을 따로 올리긴 해야겠다.
2일차도 삿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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